여양 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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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양 진씨는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을 지낸 진총후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여양은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를 가리키며, 시중공파, 어사공파, 예빈경파, 매호공파, 전농공파 등 5개의 주요 분파가 있다. 주요 인물로는 고려 시대 진준, 진화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진복창, 진채선 등이 있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 110,403명으로 조사되었으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인구 비율이 1%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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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陳寵厚|진총후중국어는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역임했으며, 1126년(이자겸의 난)(인종 4)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 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이다.
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長谷面) 일대의 고려 시대 지명이다. 백제 시대에는 사시랑현(沙尸良縣) 또는 사라현(沙羅縣)이라고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신량현(新良縣)으로 고쳐 결성군(結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년) 여양현(驪陽縣)으로 개칭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년) 감무를 폐하고 홍주(洪州)에 속하게 하였다. 1171년(명종 원년) 양광도(楊廣道) 청주목(淸州牧)에 속했다가 1395년(조선 태조 4년) 폐현되고 홍주군에 편입되었다. 홍주군은 1914년 결성군과 병합하여 홍성군(洪成郡)이 되었다.
여양 진씨는 진총후의 증손대에 이르러 시중공파, 어사공파, 예빈경파, 매호공파, 전농공파 등 상계 5파로 크게 나뉜다.[6]
진총후의 아들 진준은 병졸에서 승진하여 고려 명종조에 참지정사(叅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에 이르렀다.[5]
진준의 손자 진식·진화·진온(陳溫)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진식은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고, 진화는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선발되어 우사간(右司諫)·지제고(知制誥)를 지냈으며 지공주사(知公州事)에 이르렀다.
3. 본관
4. 분파
4. 1. 합본
1992년 발간된 여양 진씨 임신(壬申) 대동보(大同譜)에는 신광(神光) 경주, 강릉, 삼척, 나주(羅州), 진산(珍山) 진씨가 합보되어 등재되어 있다. 다만, 삼척 진씨 측에서는 1979년에 발행한 삼척진씨족보에서 여양 진씨의 주장은 전후 계대가 맞지 않는다며 분관설을 부인하고 있다.[1]
5. 인물
여양 진씨는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정계, 관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 고려시대: 진준은 고려 명종 때 참지정사, 판병부사를, 그의 손자 진화는 우사간, 지제고 등을 역임했다.
- 조선시대: 진준(陳遵)은 공조참의, 진중성은 형조참판, 진복창은 대사헌과 공조참판, 진무성은 선무원종공신, 진채선은 최초의 여성 판소리 명창이었다.
- 현대: 진헌식은 내무부 장관, 진의종은 국무총리, 진념은 경제부총리, 진대제는 정보통신부장관, 진영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5. 1. 고려시대 인물
《여양진씨대동보(驪陽陳氏大同譜)》에 의하면 시조 '''진총후'''(陳寵厚)는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역임했으며,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이다.진총후의 아들 진준은 병졸에서 승진하여 고려 명종조에 참지정사(叅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에 이르렀다.[5]
진준의 손자 진식(陳湜)·진화·진온(陳溫)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진식은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고, 진화는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선발되어 우사간(右司諫)·지제고(知制誥)를 지냈으며 지공주사(知公州事)에 이르렀다.
5. 2. 조선시대 인물
- 진준 : 고려 명종 때 참지정사, 판병부사를 지냈다.
- 진화 : 진준의 손자. 1200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를 거쳐 우사간, 지제고를 지냈으며 지공주사에 이르렀다.
- 진준(陳遵) :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434년(세종 16) 우사간대부, 1435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1436년 공조참의를 지냈다.
- 진중성(陳仲誠) : 1416년 사헌부 지평, 1428년 사헌부 장령, 1430년 양주도호부사를 거쳐 형조참판을 지냈다. 1455년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 진복창(陳復昌, ? ~ 1563년) : 1535년(중종 30)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대사헌을 거쳐 1560년 공조참판에 올랐으나 윤원형에 의해 파직되어 유배되었다.
- 진우(陳宇, ? ~ 1535년) :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기묘사화 희생자를 옹호하고, 김안로 등을 비방하다가 1535년 추국을 받아 죽었다. 1538년 신원되고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
- 진식(陳寔, 1519년 ~ 1568년) : 1547년(명종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66년 대사간, 호조참의, 1567년 병조참지, 부제학을 지내고 치사하였다.
- 진극원(陳克元, 1534년 ~ 1595년) : 남명 조식의 문인이다. 1596년 경상도 관찰사 이용순의 장계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월와일고(月窩逸稿)》를 저술하였다.
- 진무성(陳武晟, 1566년 ~ ?) : 임진왜란 때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1599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유원진첨사, 경흥부사, 통제영우후, 구성군수 등을 지냈다.
- 진극일(陳克一, 158?년 ~ 164?년) : 선조 때 무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안현감을 지냈다. 1627년 이인거의 난 때 공을 세워 1628년에 소무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공을 세워 영사원종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다.
- 진채선(陳彩仙, 1842년 ~ ?) : 전라도 고창 출신으로, 판소리 최초의 여성 명창이다.
5. 3. 현대 인물
6. 과거 급제자
여양 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7]
7. 항렬자
8. 집성촌
9. 인구
晉陽 陳氏중국어는 2000년에는 97,372명, 2015년에는 110,403명이었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총인구 대비 비율이 1% 미만이지만, 경상남도 함안군(660명, 총인구의 1.08%)에서는 1%를 넘는다.[4]
10. 인구 분포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많은 지방 자치 단체의 총인구 대비 비율이 1% 미만이지만, 경상남도 함안군(660명, 총인구의 1.08%)에서는 1%를 넘는다.[4]
참조
[1]
서적
Academy of Korean Studies 여양진씨 驪陽陳氏
http://terms.naver.c[...]
Academy of Korean Studies
[2]
논문
A Comparison of the Korean and Japanese Approaches to Foreign Family Names
http://www.sciea.org[...]
2014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26
[4]
웹사이트
본관분포
https://sgis.kostat.[...]
2023-02-24
[5]
서적
『고려사』 권100, 열전13
https://terms.naver.[...]
[6]
웹사이트
여양진씨 파보도
http://yeoyangjin.or[...]
[7]
인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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